[인터뷰] 동인천 주택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 <로컬렉트> 대표 & 건축가 김도희 님
동인천 원도심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풍경을 내려다보는 집, ‘로컬렉트’의 대표이자 건축가인 김도희 님을 만났습니다. 로컬렉트는 ‘로컬을 컬렉트 하다’는 의미가 담긴 공간입니다. 최고의 여행 친구인 남편과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추억과 함께 맛있는 로컬 와인, 먹거리 리스트를 남겼다고 합니다. 차곡차곡 모인 ‘여행의 유산'은 로컬렉트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데요. 1층 와인&편집숍 공간에서 시즌별 다양한 로컬 와인과 스낵들을 판매합니다.
동인천은 김도희 님의 추억이 나이테처럼 새겨진 곳입니다. 편집숍 로컬렉트는 조각가인 아버지의 작업실이었던 공간으로 김도희 대표는 이 건물을 활용하여 그동안 꿈꾸었던 삶을 실현하기로 하고, 모든 설계와 공사를 직접 진행했습니다. 로컬렉트를 뿌리 삼아 동인천에 자리한 김도희 대표는 오늘도 일상이라는 자잘한 뿌리를 내며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려요 : )
저는 건축사 사무소와 로컬렉트를 운영하는 건축가 김도희입니다. 건축사 사무소를 개소한 것은 2021년이고, 개소 전에는 아틀리에에서 일했어요. 로컬렉트는 ‘로컬을 콜렉트한다’는 의미가 있는 공간인데요. 저와 남편이 여행하며 즐긴 와인과 먹거리를 큐레이션하여 판매하고 있어요. 아래 층은 생활 공간, 지상층은 편집숍으로 운영 중이죠. 현재 제가 생활하는 공간이자 일터예요.
건축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아버지가 조각가셨고, 엄마는 성악가였어요. 할아버지는 사진을 하셨죠. 가족 모두가 예술을 업으로 하셔서 저 또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저도 뭔가 예술을 해야 할 거 같았죠. (웃음) 어릴 때부터 예술을 좋아했지만, 순수 예술에 큰 재능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죠. 입시 철에 고민하다 예술과 공학을 함께 다루는 건축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디자인 쪽도 고려했었지만 급변하는 산업디자인이나 시각디자인보다, (상대적으로) 천천히 변하는 건축 산업이 저와 맞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대학 시절에도 이 진로가 맞는지 계속 고민했어요. MD나 미술관 일이 궁금해서 관련 회사도 알아봤었는데, 업으로 삼으려면 학교를 가든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했어요. 막상 배우려고 보니 제가 공부한 건축만큼 재밌는 공부도 없는 것 같아서 직업으로 받아들였어요.
대형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소규모 아뜰리에에서 작업을 하셨다 들었어요. 어떤 설계를 하셨는지 궁금해요.
첫 회사에서는 파주 출판단지의 공장 설계 PM을 맡았고, 지금 사용 중인 영주시 수영장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 후에 건축계의 거장이신 *‘알바로 시자’의 한국 프로젝트에 담당자로 참여 하기도 했어요. 외국 건축가들이 한국 프로젝트를 맡을 때 로컬 팀과 함께하거든요. 제 선생님의 선생님이 알바로 시자의 제자셔서 인연이 깊으세요.
또 경희궁에 있는 단독주택 작업도 기억에 남네요. 단독주택을 설계하면서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집약해서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전에는 클라이언트와 이 정도로 숨 쉬듯 밀착하여 작업하는 일이 없었는데, 주택 작업은 달랐어요. 클라이언트와 밀착해서 일했죠. 사람과 삶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작업이었어요. ‘저 사람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어떤 걸 제안 해야 하는 걸까?’를 생각했어요. 주택은 배운 모든 것을 고루 사용하는 작업이라, 느낀 점이 많아요.
*알바로 시자: 프리츠커 건축상, 울프 예술상 등을 수상한 건축 거장이다. 1933년 포르투갈 출생으로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며 외관과 내부가 동일한 색으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아모레퍼시픽 용인’, ‘사유원’ 등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직접 건축사 사무소를 개소해서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로컬렉트가 첫 시작이었나요?
그렇죠. 개소 후에는 로컬렉트 전체를 설계하고 공사 하느라 정신없었어요. 아주 오래된 건물인데, 오랜 세월 여러 주인을 거쳐 오면서 구조가 뒤섞여 있고, 기본적인 기능이 안 되는 것도 많았어요. 그래서 건물의 원형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이 프로젝트 자체가 너무 재밌었어요. 건축가는 보통 설계하고 지어진 것까지만 확인할 수 있어서 유지 보수까지 해볼 수 없거든요. 이 건물을 조정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 중 하나는 내가 선택한 자재의 유지 보수 정도를 시험하는 것이었어요. 직접 다양한 자재를 실험적으로 사용하여 유지관리, 사용성 등을 알아보려 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저렴한 자재를 사용하기도 하고, 일부는 비싼 자재를 사용했어요. 다음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자재 선정을 더욱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컬 간식과 와인을 판매하는 로컬렉트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남편의 영향이 크죠. 남편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많이 했어요. 그 때문인지 여러 나라의 먹거리 문화에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우리나라에 지금처럼 포트 와인이 유행하기 전에 을지로에서 포트와인을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로컬렉트를 기획할 때도 남편 의견이 많이 반영됐죠. 미슐랭 3스타의 레스토랑도 좋지만 여행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들을, 그 지역의 풍경을 바라보며 소소하게 경험할 때 더 추억이 되고 빛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머무르는 여행을 선호하고 여행지 마트에서 장을 봐서 그 동네를 내려다보며 식사하고 한잔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깁니다. 이 콘셉트를 반영한 곳이 로컬렉트예요.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시작하셨는데, 동인천으로의 이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만의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했을 때 이 동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조각가셨던 아버지가 사용했던 작업실 중 하나가 지금의 로컬렉트 건물이어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묻어있는 동네예요. 이 동네는 제가 지향하는 공간의 분위기를 떠올릴 때 기준점이 되는 동네기도 해요. 어린 시절 이 동네를 거닐던 기억, 아버지의 여러 작업실에 대한 추억들이 모여 공간에 대한 제 취향의 바탕이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공간을 기획할 때 이 동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죠.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준비한 예산으로 서울에서 편집숍 겸 거주 공간을 찾기 어려웠죠.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추구하는 공간 분위기가 구현되는 곳이 아니었어요. 저희는 단순히 카페나 와인바를 운영하여 이익을 내는 것만 고려하진 않았어요. 저와 남편이 추구하는 건 여행지에서 만난 특별한 경험과 분위기를 일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희가 원하는 분위기를 가진 동네와 공간이 중요했죠. 서울에서는 성북동이나 후암동을 가보려 했지만, 너무 비쌌어요. 부동산을 돌아볼수록 동인천으로 마음이 굳어지더라고요.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동인천이 최적의 선택이었죠.
동인천에서 로컬렉트도 운영하시고 주택에서 거주도 하시는데, 일과 생활에서 어떤 점이 좋고 아쉬운지 궁금해요.
일단 동인천이 거주 밀도가 낮고 시간이 축적된 동네라 좋아요. 자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정말 괜찮은 동네예요. 주변에 먹을거리, 구경거리도 많고요. 서울 접근성도 괜찮은 편이에요. 약간 아쉬운 것은 원도심이라 동네 생활에 필요한 학교, 놀이터, 소방서, 학원, 경찰서 등이 입지 순위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 점 말고는 정말 매력적인 동네죠.
주택살이는 모두 만족스러워요. 우선 마당 생활이 정말 좋아요. 마당에서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잔디도 깎고 책도 읽어요. 가족이나 친구가 오면 마당에서 대화를 하기도 하고요. 텐트를 치고 영화를 봐도 좋죠.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의 삶보다 훨씬 다채로워요. 단독주택에 살기 때문에 삶이 풍성해지는 활동이 많아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고 싶은지 그려볼 때, 공간과 밀착된 행위들이 있거든요. 물론 아파트에서도 뜨개질도 하고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몇 평’의 정형화된 평면을 어찌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택의 삶과 비교할 때 훨씬 한정적이죠. 그래서 주택살이에서 아쉬운 점은 없어요. 다음에 이사하게 된다 해도 또 주택을 선택하고 싶어요.
‘거주’할 공간과 마을을 선택할 때 어떤 걸 고려해야 할까요?
자기 삶과 환경에서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하죠. 예를 들어 짧은 출퇴근 시간이 중요한 사람은 회사 근처에 살겠죠. 환경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것을 택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아파트에서도 잘 사는 사람이면 꼭 단독주택을 선택할 필요는 없어요. 괜히 단독 주택 선택해서 돈 쓰고, 집도 망가뜨려서 팔지도 못할 수 있거든요. 나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나열해서 가지치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고, 공동주택이 맞는 사람은 마당이 있는 빌라에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내게 맞는 거주 방식과 동네를 찾아가는 거죠.
이번에 ‘주택살이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예정인가요?
먼저 생활 공간과 관련하여 주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주거라는 게 사람이 생활하며 머무는 장소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을 포함한다고 생각해요. 참여자분들도 자신의 ‘주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어요. 집의 형태나 마감재 같은 물리적인 접근이 아니라, 행위(생활)를 묘사할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물론 건물을 수리하며 정주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했는데요. 이런 고군분투의 이야기도 조금 나누되, 앞서 이야기한 ‘행위로서의 주거’를 말하려 해요.
두 번째로는 로컬렉트 이야기 인데 도로와 접해 있고 다수가 이용하는 장소다 보니, 생활공간과는 다르게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행위 등을 고려해야 했어요. 예를 들어 많은 분이 길을 지나다 들어 오셔서 이 공간이 예전에 어땠는지 이야기 해주시는데요. 이곳이 많은 분의 추억 한 켠에 자리한 거죠. 로컬렉트가 위치한 1층은 다른 분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라 생각해요. 길가에서 저희 건물 창문을 통해 건너편 도시풍경을 볼 수 있게, 창을 크게 뚫은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로컬렉트가 동네의 한 요소로서 잘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고민했던 요소들과 그 결정들을 공유해보고 싶어요.
인더로컬에서 프로그램 운영 제안을 받고, 참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이곳으로 터를 옮긴 것이 제 삶에서 큰 변화였어요. 그 변화를 기념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제 경험을 정리할 기회도 될 것 같았고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으로 이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문화 기획자들과 무언가를 함께 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동인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장소를 소개해 주세요.
자유공원 100주년 기념탑 아래, ‘최만린 조각가’의 <움직임 그 100년>이라는 조각 작품이 있는 곳을 좋아해요.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그 안에 들어가면 바람 소리가 잘 들리고, 빛이 산란하여 들어 오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요. 또 사유지지만, ‘올림포스 호텔’도 좋아해요. 그 호텔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너무 멋지거든요. 오래된 건물에서 풍기는 멋이 있어요. 저는 경치가 중요한 사람이라, ‘월미 전망대’와 ‘답동성당’도 좋아해요. ‘율목도서관’도 자주 가는 편이고요. 너무 많네요. (웃음)
동인천으로 여행을 오거나, 삶의 터전을 옮길 미래의 이웃 위해 슬기로운 동네 생활 꿀팁 한가지 부탁드려요.
이 동네는 계절별로 즐길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이 많아요. 저는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외에도 정말 많은 프로그램이 거의 매주 있어요. 행사 스케줄을 미리 알고 오시면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답니다. 여름에는 자유공원에서 물길도 즐길 수 있어요.
앞으로 동인천에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요?
건축가로서는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을 작업으로 만나길 바라요. 서울도 정말 좋아하는 도시지만, 고향인 인천만큼 애정에 의한 자발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은 도시는 없어요. 인천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오는 변화된 모습을 잘 알고 있어 그런지, 작업을 하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지금 동인천의 모습을 틈틈이 사진으로 기록 중인데,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1.4 후퇴 때 월남하여 인천에서 활동하신 사진가세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저 역시 뷰파인더로 동네를 담으며 할아버지와 대화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동네에 대한 기록을 계속해 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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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인천 주택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 <로컬렉트> 대표 & 건축가 김도희 님
동인천 원도심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풍경을 내려다보는 집, ‘로컬렉트’의 대표이자 건축가인 김도희 님을 만났습니다. 로컬렉트는 ‘로컬을 컬렉트 하다’는 의미가 담긴 공간입니다. 최고의 여행 친구인 남편과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추억과 함께 맛있는 로컬 와인, 먹거리 리스트를 남겼다고 합니다. 차곡차곡 모인 ‘여행의 유산'은 로컬렉트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데요. 1층 와인&편집숍 공간에서 시즌별 다양한 로컬 와인과 스낵들을 판매합니다.
동인천은 김도희 님의 추억이 나이테처럼 새겨진 곳입니다. 편집숍 로컬렉트는 조각가인 아버지의 작업실이었던 공간으로 김도희 대표는 이 건물을 활용하여 그동안 꿈꾸었던 삶을 실현하기로 하고, 모든 설계와 공사를 직접 진행했습니다. 로컬렉트를 뿌리 삼아 동인천에 자리한 김도희 대표는 오늘도 일상이라는 자잘한 뿌리를 내며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려요 : )
저는 건축사 사무소와 로컬렉트를 운영하는 건축가 김도희입니다. 건축사 사무소를 개소한 것은 2021년이고, 개소 전에는 아틀리에에서 일했어요. 로컬렉트는 ‘로컬을 콜렉트한다’는 의미가 있는 공간인데요. 저와 남편이 여행하며 즐긴 와인과 먹거리를 큐레이션하여 판매하고 있어요. 아래 층은 생활 공간, 지상층은 편집숍으로 운영 중이죠. 현재 제가 생활하는 공간이자 일터예요.
건축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아버지가 조각가셨고, 엄마는 성악가였어요. 할아버지는 사진을 하셨죠. 가족 모두가 예술을 업으로 하셔서 저 또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저도 뭔가 예술을 해야 할 거 같았죠. (웃음) 어릴 때부터 예술을 좋아했지만, 순수 예술에 큰 재능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죠. 입시 철에 고민하다 예술과 공학을 함께 다루는 건축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디자인 쪽도 고려했었지만 급변하는 산업디자인이나 시각디자인보다, (상대적으로) 천천히 변하는 건축 산업이 저와 맞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대학 시절에도 이 진로가 맞는지 계속 고민했어요. MD나 미술관 일이 궁금해서 관련 회사도 알아봤었는데, 업으로 삼으려면 학교를 가든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했어요. 막상 배우려고 보니 제가 공부한 건축만큼 재밌는 공부도 없는 것 같아서 직업으로 받아들였어요.
대형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소규모 아뜰리에에서 작업을 하셨다 들었어요. 어떤 설계를 하셨는지 궁금해요.
첫 회사에서는 파주 출판단지의 공장 설계 PM을 맡았고, 지금 사용 중인 영주시 수영장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 후에 건축계의 거장이신 *‘알바로 시자’의 한국 프로젝트에 담당자로 참여 하기도 했어요. 외국 건축가들이 한국 프로젝트를 맡을 때 로컬 팀과 함께하거든요. 제 선생님의 선생님이 알바로 시자의 제자셔서 인연이 깊으세요.
또 경희궁에 있는 단독주택 작업도 기억에 남네요. 단독주택을 설계하면서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집약해서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전에는 클라이언트와 이 정도로 숨 쉬듯 밀착하여 작업하는 일이 없었는데, 주택 작업은 달랐어요. 클라이언트와 밀착해서 일했죠. 사람과 삶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작업이었어요. ‘저 사람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어떤 걸 제안 해야 하는 걸까?’를 생각했어요. 주택은 배운 모든 것을 고루 사용하는 작업이라, 느낀 점이 많아요.
지금은 직접 건축사 사무소를 개소해서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로컬렉트가 첫 시작이었나요?
그렇죠. 개소 후에는 로컬렉트 전체를 설계하고 공사 하느라 정신없었어요. 아주 오래된 건물인데, 오랜 세월 여러 주인을 거쳐 오면서 구조가 뒤섞여 있고, 기본적인 기능이 안 되는 것도 많았어요. 그래서 건물의 원형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이 프로젝트 자체가 너무 재밌었어요. 건축가는 보통 설계하고 지어진 것까지만 확인할 수 있어서 유지 보수까지 해볼 수 없거든요. 이 건물을 조정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 중 하나는 내가 선택한 자재의 유지 보수 정도를 시험하는 것이었어요. 직접 다양한 자재를 실험적으로 사용하여 유지관리, 사용성 등을 알아보려 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저렴한 자재를 사용하기도 하고, 일부는 비싼 자재를 사용했어요. 다음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자재 선정을 더욱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컬 간식과 와인을 판매하는 로컬렉트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남편의 영향이 크죠. 남편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많이 했어요. 그 때문인지 여러 나라의 먹거리 문화에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우리나라에 지금처럼 포트 와인이 유행하기 전에 을지로에서 포트와인을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로컬렉트를 기획할 때도 남편 의견이 많이 반영됐죠. 미슐랭 3스타의 레스토랑도 좋지만 여행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들을, 그 지역의 풍경을 바라보며 소소하게 경험할 때 더 추억이 되고 빛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머무르는 여행을 선호하고 여행지 마트에서 장을 봐서 그 동네를 내려다보며 식사하고 한잔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깁니다. 이 콘셉트를 반영한 곳이 로컬렉트예요.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시작하셨는데, 동인천으로의 이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만의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했을 때 이 동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조각가셨던 아버지가 사용했던 작업실 중 하나가 지금의 로컬렉트 건물이어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묻어있는 동네예요. 이 동네는 제가 지향하는 공간의 분위기를 떠올릴 때 기준점이 되는 동네기도 해요. 어린 시절 이 동네를 거닐던 기억, 아버지의 여러 작업실에 대한 추억들이 모여 공간에 대한 제 취향의 바탕이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공간을 기획할 때 이 동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죠.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준비한 예산으로 서울에서 편집숍 겸 거주 공간을 찾기 어려웠죠.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추구하는 공간 분위기가 구현되는 곳이 아니었어요. 저희는 단순히 카페나 와인바를 운영하여 이익을 내는 것만 고려하진 않았어요. 저와 남편이 추구하는 건 여행지에서 만난 특별한 경험과 분위기를 일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희가 원하는 분위기를 가진 동네와 공간이 중요했죠. 서울에서는 성북동이나 후암동을 가보려 했지만, 너무 비쌌어요. 부동산을 돌아볼수록 동인천으로 마음이 굳어지더라고요.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동인천이 최적의 선택이었죠.
동인천에서 로컬렉트도 운영하시고 주택에서 거주도 하시는데, 일과 생활에서 어떤 점이 좋고 아쉬운지 궁금해요.
일단 동인천이 거주 밀도가 낮고 시간이 축적된 동네라 좋아요. 자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정말 괜찮은 동네예요. 주변에 먹을거리, 구경거리도 많고요. 서울 접근성도 괜찮은 편이에요. 약간 아쉬운 것은 원도심이라 동네 생활에 필요한 학교, 놀이터, 소방서, 학원, 경찰서 등이 입지 순위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 점 말고는 정말 매력적인 동네죠.
주택살이는 모두 만족스러워요. 우선 마당 생활이 정말 좋아요. 마당에서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잔디도 깎고 책도 읽어요. 가족이나 친구가 오면 마당에서 대화를 하기도 하고요. 텐트를 치고 영화를 봐도 좋죠.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의 삶보다 훨씬 다채로워요. 단독주택에 살기 때문에 삶이 풍성해지는 활동이 많아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고 싶은지 그려볼 때, 공간과 밀착된 행위들이 있거든요. 물론 아파트에서도 뜨개질도 하고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몇 평’의 정형화된 평면을 어찌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택의 삶과 비교할 때 훨씬 한정적이죠. 그래서 주택살이에서 아쉬운 점은 없어요. 다음에 이사하게 된다 해도 또 주택을 선택하고 싶어요.
‘거주’할 공간과 마을을 선택할 때 어떤 걸 고려해야 할까요?
자기 삶과 환경에서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하죠. 예를 들어 짧은 출퇴근 시간이 중요한 사람은 회사 근처에 살겠죠. 환경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것을 택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아파트에서도 잘 사는 사람이면 꼭 단독주택을 선택할 필요는 없어요. 괜히 단독 주택 선택해서 돈 쓰고, 집도 망가뜨려서 팔지도 못할 수 있거든요. 나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나열해서 가지치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고, 공동주택이 맞는 사람은 마당이 있는 빌라에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내게 맞는 거주 방식과 동네를 찾아가는 거죠.
이번에 ‘주택살이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예정인가요?
먼저 생활 공간과 관련하여 주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주거라는 게 사람이 생활하며 머무는 장소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을 포함한다고 생각해요. 참여자분들도 자신의 ‘주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어요. 집의 형태나 마감재 같은 물리적인 접근이 아니라, 행위(생활)를 묘사할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물론 건물을 수리하며 정주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했는데요. 이런 고군분투의 이야기도 조금 나누되, 앞서 이야기한 ‘행위로서의 주거’를 말하려 해요.
두 번째로는 로컬렉트 이야기 인데 도로와 접해 있고 다수가 이용하는 장소다 보니, 생활공간과는 다르게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행위 등을 고려해야 했어요. 예를 들어 많은 분이 길을 지나다 들어 오셔서 이 공간이 예전에 어땠는지 이야기 해주시는데요. 이곳이 많은 분의 추억 한 켠에 자리한 거죠. 로컬렉트가 위치한 1층은 다른 분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라 생각해요. 길가에서 저희 건물 창문을 통해 건너편 도시풍경을 볼 수 있게, 창을 크게 뚫은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로컬렉트가 동네의 한 요소로서 잘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고민했던 요소들과 그 결정들을 공유해보고 싶어요.
인더로컬에서 프로그램 운영 제안을 받고, 참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이곳으로 터를 옮긴 것이 제 삶에서 큰 변화였어요. 그 변화를 기념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제 경험을 정리할 기회도 될 것 같았고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으로 이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문화 기획자들과 무언가를 함께 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동인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장소를 소개해 주세요.
자유공원 100주년 기념탑 아래, ‘최만린 조각가’의 <움직임 그 100년>이라는 조각 작품이 있는 곳을 좋아해요.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그 안에 들어가면 바람 소리가 잘 들리고, 빛이 산란하여 들어 오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요. 또 사유지지만, ‘올림포스 호텔’도 좋아해요. 그 호텔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너무 멋지거든요. 오래된 건물에서 풍기는 멋이 있어요. 저는 경치가 중요한 사람이라, ‘월미 전망대’와 ‘답동성당’도 좋아해요. ‘율목도서관’도 자주 가는 편이고요. 너무 많네요. (웃음)
동인천으로 여행을 오거나, 삶의 터전을 옮길 미래의 이웃 위해 슬기로운 동네 생활 꿀팁 한가지 부탁드려요.
이 동네는 계절별로 즐길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이 많아요. 저는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외에도 정말 많은 프로그램이 거의 매주 있어요. 행사 스케줄을 미리 알고 오시면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답니다. 여름에는 자유공원에서 물길도 즐길 수 있어요.
앞으로 동인천에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요?
건축가로서는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을 작업으로 만나길 바라요. 서울도 정말 좋아하는 도시지만, 고향인 인천만큼 애정에 의한 자발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은 도시는 없어요. 인천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오는 변화된 모습을 잘 알고 있어 그런지, 작업을 하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지금 동인천의 모습을 틈틈이 사진으로 기록 중인데,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1.4 후퇴 때 월남하여 인천에서 활동하신 사진가세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저 역시 뷰파인더로 동네를 담으며 할아버지와 대화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동네에 대한 기록을 계속해 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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